그를 따랐지만, 그분을 믿지 않았다: 가룟유다의 비극
설교 요약
예수님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그분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가룟유다의 비극은 이 두려운 질문을 우리 앞에 놓는다. 그는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으며 제자들의 재정까지 맡았다. 그러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드렸다는 뜻은 아니었다. 우리도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하면서, 정작 삶의 결정권은 자신이 움켜쥐고 있지는 않은가? 요한복음 12장에서 유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듯 말하지만, 그 마음에는 돈을 향한 욕심이 숨어 있었다. 예수님이 자신이 기대하던 정치적 왕의 길을 걷지 않자 실망은 배신으로 자라났다. 비극은 하루아침에 찾아오지 않았다. 탐심과 비교, 자존심과 작은 불순종이 쌓이면서 마음의 방향을 바꾸었다.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믿음의 증거는 아니며, 사역의 분주함이 순종을 대신할 수도 없다. 그런 유다를 예수님은 처음부터 배제하지 않으셨다. 배신을 아시면서도 제자로 받아들이셨고, 마지막 식탁에서도 그의 발을 씻어 주셨다. 사랑은 상대를 강제로 붙잡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기회를 건넨다.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 역시 단지 잘못의 크기나 눈물의 양에 있지 않았다. 후회는 자신을 바라보며 멈추지만, 회개는 주님을 향해 방향을 돌린다. 기독교 교양 수업이 싫어 피했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휴학 후 복학한 그는 졸업에 필요한 수업을 들으러 왔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열고 앞자리에 앉았다. 수업과 열 번의 개인 성경 공부를 거치며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기로 결심하고 침례를 받았다. 시간이 흐른 뒤 결혼을 앞두고 다시 연락했고, 예비 남편도 성경을 배우고 지역 교회와 연결되었다. 믿음의 여정에는 멀어지는 때도 있었지만,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는 걸음도 있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은 작은 탐욕과 냉소를 살펴보자. 스쳐 가는 악한 생각을 모두 막을 수는 없어도, 그 생각이 마음에 집을 짓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마음의 집에 잠시 초대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열쇠를 드리자. 맡기기 어려운 아픔과 계획, 선택의 권한까지 내어 드리며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자. 발걸음이 틀어졌더라도 오늘 다시 돌이킬 수 있다. 주님은 지금도 물으신다. 우리는 그분을 따르는가, 아니면 우리가 원하는 예수님만 찾고 있는가?
핵심 포인트
-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 것과 그분을 신뢰하며 마음을 드리는 것은 다르다.
- 교회에서 맡은 직분과 사역이 믿음과 순종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 탐심과 비교, 자존심과 작은 불순종을 방치하면 마음은 점차 주님에게서 멀어진다.
- 후회와 회개의 차이는 눈물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방향에 있다.
- 예수님은 배신할 제자의 발까지 씻으시며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사랑을 보여 주셨다.
- 참된 신뢰는 삶의 열쇠와 결정권을 예수님께 맡기고 그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