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찬송하리라
설교 요약
선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것이 비난과 상처라면, 우리는 무엇을 노래할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걸어간 길에서 뜻밖의 고난을 만날 때, 우리의 입술에는 원망이 먼저 맺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깊이는 평온한 날의 고백만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오히려 찬송하리라’는 고백이 우리를 부릅니다. 사도행전 14장은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돌에 맞아 죽은 사람처럼 성 밖에 버려진 사건을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던 자리에도 시기와 폭력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비극에 이야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바울이 일어나’라는 짧은 표현으로 새로운 걸음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다시 일어서는 삶입니다. 설교에서 인용된 『사도행적』은 그 순간을 더욱 생생하게 펼쳐 보입니다. 제자들이 슬픔 가운데 둘러서 있을 때, 쓰러졌던 바울이 갑자기 머리를 들고 일어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그가 선택한 것은 복수의 돌이 아니라 찬송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들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청년 디모데에게도 깊은 믿음의 본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바울은 더베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했고, 이후 자신을 박해했던 지역으로 돌아가 제자들을 굳게 세웠습니다. 우리에게도 돌처럼 날아오는 말과 억울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던지기보다, 먼저 눈을 예수님께 돌려봅시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원망 대신 찬송으로 한 걸음을 내디뎌봅시다. 동시에 물어야 합니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존심과 시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고 있습니까?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주고, 받은 은사로 봉사하는 일이야말로 일상에서 부르는 찬송입니다. 바울의 몸에 남은 예수의 흔적은 고통의 기억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하는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찬송은 아픔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픔보다 크신 예수님을 붙드는 고백입니다. 우리 삶의 악보가 이해할 수 없는 쉼표와 엇박자로 가득해 보여도, 하늘의 지휘자께서는 고난을 압도하는 기쁨의 하모니를 이루십니다. 오늘 다 설명되지 않는 자리에서도 다시 머리를 듭시다. 예수님이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오히려 찬송할 수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
- 믿음은 고난을 피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고난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삶이다.
- 상처 앞에서 복수의 돌 대신 찬송을 선택할 때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난다.
- 고난 자체보다 고난을 압도하는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 예수의 흔적은 아픔의 기억을 넘어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흔적이 될 수 있다.
-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사랑과 용서와 봉사로 찬송을 살아내야 한다.
-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걸음을 통해 기쁨의 하모니를 이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