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최효명
화요예배

잃어버린 두 아들(눅 15:31-32)

최효명 · 2026년 04월 06일

두 아들을 품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돌아갑시다

설교 요약

우리는 하나님 곁에 있는가, 아니면 그저 하나님의 집에 머물러 있는가? 예배하고 봉사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누가복음의 탕자 비유는 집을 떠난 한 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몸으로 떠난 둘째와 마음으로 떠난 첫째, 그리고 두 아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신앙의 거리보다 마음의 방향을 돌아보게 된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없이 살아야 자유로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 우리에 이르자, 자유라고 부르던 삶이 자신을 묶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를 다시 일으킨 것은 굶주림만이 아니었다. 돌아가면 아버지가 내치지 않으시리라는 사랑의 기억이었다. 아들이 방향을 돌렸을 때, 아버지는 먼저 달려가 그를 안았다. 실패를 따져 묻기보다 좋은 옷과 반지와 신발로 아들의 자리를 회복시켰다. 고등학생 때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며 자취를 원했던 한 자녀의 이야기가 이 마음을 비춘다. 자유를 얻었다는 기쁨 앞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너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인지, 얼마나 걱정되고 마음 아픈지 너는 모를 것이라고. 떠나는 사람에게는 설렘이지만, 보내는 아버지에게는 사랑의 아픔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날 때에도 그분의 마음에는 이런 기다림이 남는다. 첫째 아들은 집에 있었지만 돌아온 동생을 위한 잔치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순종이 더 큰 보상을 받을 근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먼저 양보하고 용서하던 남매도 어느새 ‘내가 했으니 너도 해야 한다’는 계산으로 다투게 되었다. 사랑으로 시작한 행동에 조건이 붙듯, 우리의 신앙도 은혜를 누리는 관계에서 보상을 요구하는 거래로 바뀔 수 있다. 문제는 성실함이 아니라, 성실함을 내세워 아버지의 사랑을 판단하는 마음이다. 이제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을 통해 얻을 것을 사랑하는가? ‘나는 이렇게 했는데’라는 불평이 올라올 때, 이미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보자. 누군가의 회복을 비교와 질투로 바라보았다면 그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뻐해 보자. 순종을 보상의 청구서로 삼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 잔치에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아버지는 떠난 아들에게 달려가고, 잔치를 거부한 아들에게도 나와 말을 건넨다. 두 아들 모두 사랑의 초대 밖에 있지 않다. 완벽해진 뒤에 돌아갈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자.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는 말씀 안에서, 이미 주어진 사랑을 발견하자. 돌아온 자녀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잔치에 우리도 함께 들어가자.

핵심 포인트

  • 하나님의 집에 머물러 있어도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 하나님을 떠나 얻으려는 자유는 오히려 죄의 속박으로 이어진다.
  •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녀를 하나님은 정죄보다 사랑으로 맞아 주신다.
  • 순종을 보상의 근거로 삼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거래로 바뀐다.
  • 다른 사람의 회복을 함께 기뻐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에 참여하는 길이다.
  • 하나님은 떠난 자녀와 곁에 머문 자녀 모두에게 다가가 사랑의 잔치로 초대하신다.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