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새 것이로다 최경천 목사 26.04.18.(안)
설교 요약
우리는 왜 열심히 믿으면서도 기쁨을 잃어버릴까? 예배하고 말씀을 읽는데도 마음이 무겁다면,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새로운 눈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신앙은 의무를 견디는 일이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 사랑을 알아볼 때 굳어진 표정이 풀리고, 익숙했던 예배가 감사와 감탄의 자리로 바뀐다. 우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두려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의 고백은 신앙의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 준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류에게 죄와 죽음이 들어왔지만, 한 분 예수님의 순종과 희생으로 생명의 길이 열렸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죽어서라도 우리를 살리시겠다는 사랑의 보증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를 대신한 죽음임을 믿는 사람에게 영원한 형벌은 더 이상 삶을 짓누르는 운명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어린 벤 카슨은 공부를 잘하지 못했지만, 책을 눈 가까이 가져가는 모습을 살핀 어머니가 근시를 발견하고 안경을 맞춰 주자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성적이 향상되고 탐구의 길이 열렸다. 믿음에도 이런 시력의 변화가 필요하다. 무의도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일몰과 일출, 바다와 바람을 바라보았던 경험 역시 같은 깨달음을 전한다. 복잡한 생각이 잦아든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이 차올랐다. 길가에 핀 금낭화도 그저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사랑이 주렁주렁 매달린 선물로 보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결심은 무조건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만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받아들이자. 하루의 풍경 속에서 창조주의 마음을 발견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를 살리신 사랑을 기억하자.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외모와 조건, 과거의 실수로 판단하지 말자. 그도 주님의 희생으로 존귀하게 된 존재다. 부담을 주는 얼굴 대신 편안한 미소로 맞이하고, 따뜻한 말과 작은 배려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언젠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새로운 생명의 선언이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붙들려 살던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리에게는 기뻐할 이유가 있고, 노래할 이유가 있다. 사랑받는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볼 때 평범한 하루도 은혜의 풍경이 된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움직이고, 그 사랑으로 서로를 대할 때 새로운 삶은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 꽃피기 시작한다.
핵심 포인트
- 신앙의 변화는 더 많은 노력에 앞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보는 눈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 그리스도의 사랑은 의무와 두려움을 넘어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 십자가는 죽어서라도 우리를 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보증이다.
-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형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간다.
- 창조세계와 일상의 작은 선물 속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 서로를 육체의 조건으로 판단하지 말고 주님의 희생으로 존귀하게 된 존재로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