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쾌지수가 높아질 때(창 4:3-7)
설교 요약
왜 예배를 드리고도 마음에는 짜증이 남아 있을까요? 믿음으로 살아가는데도 풀리지 않는 문제와 타인의 행복 앞에서 우리는 쉽게 웃음을 잃습니다. 더위와 피로, 늙어가는 몸처럼 피할 수 없는 불편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불쾌함이 환경에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내 노력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마음, 누군가보다 뒤처졌다는 비교가 우리 안의 기쁨을 빼앗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했고, 그 마음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정성의 부족이 아니라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자신의 수고와 성과를 내세우는 예배와 하나님의 희생을 의지하는 예배는 다릅니다. 아벨의 제사가 가리키는 길은 분명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으로 획득하는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그 은혜는 가장 낮고 버려진 자리까지 찾아옵니다. 속죄제의 가죽과 고기와 똥이 진영 밖에서 불살라졌듯, 예수님도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그곳에 주님이 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수치와 실패도 그분의 사랑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한 영어 강사는 레위기의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라는 말씀에서 깊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자신의 추함을 아시는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신다는 깨달음이 그를 웃게 했습니다. 이제 불쾌감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추어 물어봅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어려움에서 오는 감정입니까, 아니면 비교와 자부심이 만들어 낸 분노입니까? 다른 사람의 사진과 성취를 바라보던 눈을 십자가로 돌려보십시오. 예배와 기도 속에서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에 기초한 분노와 자신을 파괴하는 분노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마음을 다스리라는 초청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웃음’이라는 이름의 이삭을 주셨습니다. 구원에는 우리를 다시 웃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삶의 문제가 모두 사라져야만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가장 초라한 곳에 있을 때에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진짜 미소의 시작입니다. 오늘 아침과 저녁,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사랑을 기억해 보십시오. 억지로 꾸민 표정이 아니라 은혜에서 피어나는 미소로, 불쾌한 하루 속에서도 다시 기쁨의 길을 걸어갑시다.
핵심 포인트
- 구원은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하는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다.
- 예배의 중심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일 때 참된 기쁨이 회복된다.
-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와 실패 가운데까지 찾아오시는 사랑을 보여주신다.
- 타인과의 비교는 기쁨을 빼앗지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마음을 다시 일으킨다.
- 불쾌한 감정의 근원을 분별하고 자신과 타인을 파괴하는 분노를 다스려야 한다.
- 진정한 미소는 문제가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구원의 확신에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