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허상민
화요예배

우리가 가장 혼동해 온 신앙의 언어: 몸, 육신, 영

허상민 · 2025년 12월 22일

몸을 주신 사랑 안에서 부활의 소망을 품으세요

설교 요약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몸을 멀리해야 할까? 몸은 신앙의 장애물이고, 구원은 몸에서 벗어나는 일일까? 익숙하게 사용해 온 ‘몸, 육신, 영’이라는 말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성경이 대립시키는 것은 몸과 영이 아니라, 죄의 지배와 성령의 다스림이다. 이 차이를 깨닫는 순간, 지치고 병든 우리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몸은 버려야 할 껍데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창조의 선물이다. 반면 이 설교가 짚어 내는 ‘육신’은 하나님 없이 자기 욕망과 판단을 따라 살아가려는 상태다. 그러므로 신앙의 싸움은 몸을 미워하는 싸움이 아니다. 내 삶의 주인이 죄인지, 성령인지 묻는 싸움이다. 바울이 기다린 것도 영혼의 탈출이 아니라 ‘우리 몸의 속량’이었다. 장례식의 입관 예배에서 뜻밖의 권면이 들려온다. ‘많이 우십시오. 고인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많이 우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붙들고 눈물을 멈추라는 말이 더 익숙한 자리에서, 이 권면은 마음을 멈춰 세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슬퍼할 감정과 눈물 흘릴 몸을 주셨다. 그리움을 쏟아 내는 시간도 믿음 밖에 있지 않다. 눈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 하나님은 몸을 가진 우리의 삶을 품으신다. 이제 우리의 몸을 죄의 도구가 아니라 의의 무기로 드려야 한다. 손으로 이웃을 돕고, 발로 섬김의 자리를 찾아가며, 몸으로 드리는 헌신을 거룩한 산 제사로 올려 드리자. 동시에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자기중심성과 익숙한 죄의 습관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자. 몸이 성령의 전이라면, 몸을 함부로 대하거나 영혼만 중요하다고 여길 수 없다. 몸과 마음과 영을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오늘 우리가 실천할 예배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을 우회하지 않으셨다.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고, 몸으로 부활하셨다. 다시 오실 주님은 우리의 낮은 몸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시키실 것이다. 지금의 연약함이 마지막 모습은 아니다. 눈물 흘리는 몸도, 병들고 지친 몸도 하나님의 회복을 기다린다. 그러니 몸을 버릴 날이 아니라 새롭게 하실 날을 소망하자. 그 소망 안에서 오늘의 온 존재를 주님께 드리며 살아가자.

핵심 포인트

  • 몸은 신앙의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시고 구속하실 선물이다.
  • 영과 육신의 대립은 물질과 비물질의 대립이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과 죄의 지배 사이의 대립이다.
  • 슬픔과 눈물도 하나님께서 주신 몸으로 경험하는 삶의 일부이며, 부활의 소망과 모순되지 않는다.
  •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므로 죄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어야 한다.
  • 몸과 마음과 영을 함께 하나님께 드리며 자기중심성과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 성령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 구원의 완성은 몸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되는 것이다.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