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최경천
안식일예배

대쟁투와 강자동일시(눅 22:24-27)

최경천 · 2025년 07월 18일

높아짐을 내려놓고 낮은 이의 곁에 섭시다

설교 요약

우리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훗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오늘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기 위해서인가? 더 높은 자리, 더 강한 인맥, 더 많은 소유를 얻어야 안전하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도 어느새 힘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강자처럼 되어 그 특권을 누리려는 ‘강자동일시’는 세상 밖의 문제가 아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우리 마음에도 깊숙이 들어올 수 있는 유혹이다.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들조차 “누가 크냐”를 놓고 다투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나라를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세계로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하나님과 같아지려 높아졌던 사탄의 정신과, 섬기는 자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의 정신은 정반대다. 선과 악의 대쟁투는 먼 하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 내가 높아짐과 낮아짐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화 ‘청설’에는 청각장애가 있는 동생 가을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언니 여름이 등장한다. 동생이 수영 선수의 꿈을 이루도록 함께 애쓰지만, 장애인과 같은 수영장을 쓰면 아이들이 오염된다는 학부모들의 요구 앞에서 두 자매는 다른 수영장으로 옮겨야 한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아픈 질문을 남긴다. 우리 교회와 학교는 누구를 환영하는가? 약한 사람이 찾아왔을 때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문턱을 세우는가? 신앙은 미래의 구원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상처를 치유하는 살아 있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권력과 자리를 향한 욕망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자.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는 마음을 돌아보고, 오히려 외로운 이와 힘없는 이의 곁으로 걸어가자. 교회의 직분은 자신을 높이는 계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리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작은 친절을 건네며, 경쟁의 정신에 의지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구체적인 삶이다.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섬김이다. 작은 자에게 건넨 냉수 한 그릇도 주님은 잊지 않으신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누군가의 하루를 살리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자. 우리가 낮아질 때 공동체의 문턱도 낮아지고, 누구나 환영받는 자리가 열린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 말씀을 따라 걷는 오늘, 하나님 나라는 우리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핵심 포인트

  • 예수님을 믿는 삶은 미래의 구원을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것이다.
  • 강자의 힘과 특권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강자동일시는 신앙 안에서도 경계해야 할 유혹이다.
  • 선악의 대쟁투는 높아지려는 경쟁의 정신과 낮아져 섬기는 예수님의 정신 사이에서 드러난다.
  • 교회의 직분과 권한은 자신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책임이다.
  • 하나님의 공동체는 강한 사람과의 연결보다 약한 사람을 환영하고 그 곁에 서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
  • 작은 자에게 건네는 냉수 한 그릇과 일상의 친절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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