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 스토리의 세 가지 초(超) 상식(행 11:19-26)
설교 요약
왜 하나님을 믿는데도 고난이 찾아오는가? 왜 헌신하는 사람보다 눈에 띄는 사람만 기억되는가? 익숙한 공동체 안에 머무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은 충분한가? 바나바의 이야기는 이 질문들 앞에서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다. 복음의 능력은 고통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꾸고, 이름 없는 섬김을 위대한 동역으로 세우며, 닫힌 울타리 너머로 우리를 이끈다. 스데반의 순교와 거센 핍박은 예루살렘 교회를 무너뜨리는 듯했다. 그러나 흩어진 성도들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했고, 주님의 손이 함께하자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왔다. 교회의 위기가 복음의 길을 넓힌 것이다. 지금의 고통이 축복처럼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아픔 속에서 생명을 낳는 일을 시작하실 수 있다. 밤새 홀로 산통을 견딘 아내와, 피곤에 지쳐 잠들었다가 출산 소식을 들은 남편의 이야기는 웃음과 미안함을 함께 남긴다. 그런데 그토록 아픈 출산을 다시 감당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품에 안긴 생명의 기쁨이다. 고난 한가운데 있는 우리에게도 이 이야기는 조용히 묻는다. 지금의 눈물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또 하나의 반전은 바나바의 자리에서 드러난다. 그는 사울을 찾아 다소로 갔고, 안디옥으로 데려와 함께 사람들을 가르쳤다. 우리가 기억하는 바울의 사역 뒤에는 한 사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세워 준 바나바가 있었다. 하나님께는 조연도 귀한 주연이다. 모세의 손을 붙든 아론과 훌처럼, 누군가를 받쳐 주는 손길 역시 하나님의 승리에 참여한다. 마지막 도전은 우리의 ‘예루살렘’을 넘어서는 것이다. 안디옥에서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듯, 신앙은 익숙한 사람들끼리의 울타리를 넘어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무엇을 먹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상보다, 함께하고 싶고 본받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자. 낯선 이에게 먼저 인사하고, 외국인 이웃을 식탁에 초대하며, 지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작은 친절부터 시작하자. 한 교수의 오랜 정성을 받은 학생은 신앙의 초대 앞에서 ‘교수님이 믿으시는 하나님이면 제가 믿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누군가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런 초대가 될 수 있다. 고난 속에서도 주님께 붙어 있고, 다른 사람을 세우며, 사랑의 경계를 넓혀 가자. 당신의 따뜻한 삶을 통해 누군가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질 것이다.
핵심 포인트
-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의 고난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낳는 산통이 될 수 있다.
- 하나님께는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없으며, 사람을 세우는 섬김도 위대한 동역이다.
- 바나바처럼 누군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할 때 복음의 역사는 넓어진다.
- 익숙한 관계와 고정관념의 울타리를 넘어설 때 더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을 수 있다.
- 그리스도인은 별난 규칙보다 따뜻한 친절과 구별된 삶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