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이충열
금요예배

성전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

이충열 · 2026년 03월 05일

우리의 틀을 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세요

설교 요약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한 종교의 틀을 지키고 있는가? 성전을 사랑하고 율법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 비극은 먼 옛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예배 형식과 직분, 교회의 제도가 하나님보다 앞설 때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뜻을 거절할 수 있다. 신앙의 중심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메뉴판의 사진과 설명이 너무 훌륭해서 음식은 주문하지 않은 채 식당을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메뉴판은 음식을 가리키는 안내이지, 배를 채워 주는 음식 자체가 아니다. 성전과 율법도 하나님을 만나도록 주어진 선물이었다. 그러나 안내판을 목적처럼 붙들면, 눈앞에 오신 주님마저 외면하게 된다. 우리는 신앙의 형식에 만족하면서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만남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스데반의 설교는 우리의 시선을 성전 밖으로 이끈다.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애굽에서 요셉과 함께하셨으며, 광야에서 모세를 만나셨다. 거룩함은 건물의 벽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서 시작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공간에 갇히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가정과 일터의 순종으로 이어져야 한다. 봉사에 힘쓰는 손과 함께 말씀을 가까이하는 마음도 자라야 한다. 거짓 증언과 모함 앞에서도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사람들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진리가 자신을 규정함을 믿었기 때문이다. 돌이 날아오는 순간에도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고,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죽이는 이들의 용서를 구했다. 예수님을 증언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우리도 억울함 속에서 사람의 시선에 매이기보다 주님을 바라보며, 불편한 말씀 앞에서는 자신을 방어하기보다 순종을 선택하자. 왜 하나님이 스데반의 죽음을 막지 않으셨는지 우리는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복음은 멈추지 않았다. 박해는 복음을 더 먼 곳으로 흩어 보냈고, 그 현장에 있던 사울도 훗날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익숙한 틀을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닮아 가는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핵심 포인트

  • 성전과 제도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도구이지 하나님을 대신할 신앙의 목적이 아니다.
  • 하나님의 임재는 특정 건물이나 장소에 제한되지 않으며 삶의 모든 자리에서 드러난다.
  • 봉사와 말씀은 함께 붙들어야 하며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알아 가야 한다.
  •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 익숙한 관습을 지키려는 마음보다 불편한 진리에도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용서하며 살아갈 때 복음은 계속 전진한다.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