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최선우
금요예배

가서, 다시는 빛의 보폭으로 걷는 신앙

최선우 · 2026년 04월 16일

주님의 빛에 보폭을 맞추어 함께 걸읍시다

설교 요약

용서받았다는 기쁨은 분명한데, 왜 우리의 삶은 다시 익숙한 어둠을 맴도는가? 예배에서는 은혜를 고백하지만 월요일이면 무력감에 주저앉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죄에서 벗어나는 것과 그 이후 어디로 걸어갈지 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유를 얻었어도 갈 길을 모르면 다시 옛자리로 돌아가기 쉽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서의 선언을 넘어, 오늘의 발걸음을 이끌어 줄 빛이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앞에서 예수님은 침묵하신다. 돌을 든 사람들의 소음 사이에 은혜가 머물 자리를 만드시고, 마침내 말씀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것은 불가능한 숙제를 맡기고 떠나시는 명령이 아니다. 이어지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는 선언 안에는 주님 자신이 우리의 길을 이끄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광야의 불기둥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따라야 할 길이었듯, 예수님은 바라보기만 할 빛이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생명의 빛이시다. 그 빛이 참되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십자가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드러내는 사건이다. 전쟁으로 아내와 다섯 아이를 북에 남겨 두고 차남과 피란한 장기려 박사는 부산의 천막 병원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마주했다. 눈과 다리를 잃은 환자들, 부족한 물자 앞에서 그는 설명으로만 알던 예수님을 넘어 고통의 자리에서 함께하시는 주님을 만나 갔다. 수술비가 없는 환자에게 밤중에 뒷문을 열어 주고 자신의 월급을 앞당겨 받아 환자를 돕던 삶은, 빛을 이해하는 데서 빛을 따르는 데로 옮겨 간 발걸음이었다. 우리의 신앙도 예배당과 일상으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성전에서도, 우물가에서도, 십자가에서도 항상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다. 참된 헌금은 돈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읽을 때 먼저 그때의 상황을 살피고, 내 삶에 주시는 뜻을 묻고, 이웃과의 관계까지 돌아보자. 내 열심으로 앞서가기보다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주님이 걸으시면 걷고 멈추시면 멈추는 순종을 연습하자.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 앞에서 혼자 이를 악물 필요는 없다. 우리를 용서하신 분이 용서 이후의 길도 함께 걸으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우리의 걸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주님이 계신다. 오늘 필요한 것은 완벽한 확신을 모두 갖추는 일이 아니라 그 빛을 향해 한 걸음을 떼는 일이다. 어둠으로 돌아가던 발을 돌려, 주님의 보폭에 삶을 맞추자. 자유는 끝이 아니라 생명의 빛과 동행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핵심 포인트

  • 죄 용서의 기쁨을 넘어, 용서 이후의 삶을 이끄시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명령에는 주님 자신이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 예수님은 멀리서 감상하거나 연구할 빛이 아니라 삶의 발걸음을 맞추어 따라야 할 빛이시다.
  •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알아 가는 신앙은 지적인 동의를 넘어 고통의 현장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 참된 헌금은 예배와 일상을 나누지 않고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지속적인 순종이다.
  • 말씀 앞에서 자신과 이웃의 삶을 돌아보며, 내 속도보다 주님의 뜻에 보폭을 맞추어야 한다.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