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보고도, 내쫒았습니다
설교 요약
우리는 진리를 몰라서 외면하는가, 아니면 너무 잘 알기에 밀어내는가? 주님의 말씀이 내 자존심과 안락함을 흔들 때, 우리는 믿음보다 방어를 먼저 선택하기도 한다. 알아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다르다. 이 설교는 다른 누군가의 완고함을 비판하기 전에, 내가 지키려는 작은 포도원 앞에 멈춰 서게 한다. 나는 주님을 알아보고도 내 삶 밖으로 내쫓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의 비유에서 주인은 포도원에 울타리와 틀과 망대를 모두 마련한다. 문제는 포도원이 아니라, 맡겨진 것을 자기 소유로 여긴 농부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해서 죽인 것이 아니다. 상속자임을 알아보았기에,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려고 밖으로 내던졌다. 비유를 듣던 종교 지도자들도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씀임을 알았지만 회개 대신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다. 진리를 정확히 아는 지식도 마음의 주인을 바꾸지 못하면 거절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손 씻기가 산모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음을 밝혀낸 의사 센멜바이스의 이야기는 이 거절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손 위생을 실천하자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지만, 자신의 손이 죽음의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의료계는 그의 발견을 외면했다. 생명을 살리는 진실보다 자신의 권위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나치 앞에서 침묵했던 마르틴 니묄러의 고백 역시 묻는다. 내 일이 아니라며 지킨 안전은 끝내 누구를 지켜주었는가? 이 질문은 우리의 관계와 통장, 일상으로 들어온다. 먼저 화해하라는 마음의 부름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미루지는 않는가? 고통받는 이웃에게 손을 펴야 함을 알면서도 불안을 이유로 더 움켜쥐지는 않는가? 말씀을 설명하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정작 그 말씀대로 사는 일은 피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필요한 순종은 거창하지 않다. 먼저 연락하고, 나눔의 손을 열고, 자신을 합리화하던 말을 멈추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이 말씀의 아픔은 우리를 남보다 악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데 있지 않다. 우리 역시 같은 두려움과 탐욕을 품고 있음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한다. 그러나 그 깨달음 앞에서 다시 선택할 수 있다. 내 영역을 지키려고 밀어냈던 주님의 말씀을 이제는 마음 안으로 모셔 들이자. 맡겨진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인정하자. 알아보는 믿음에서 순종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움켜쥔 손을 펴는 작은 결단이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핵심 포인트
- 진리를 알아보는 것과 그 진리에 순종하는 것은 다르다.
- 하나님께 맡겨 받은 삶을 내 소유로 착각할 때 주님의 말씀을 밀어내게 된다.
- 자신의 권위와 안전을 지키려는 마음은 생명을 살리는 진실마저 거절하게 한다.
- 먼저 화해하고 이웃에게 나누는 순종은 자존심과 불안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 말씀을 설명하는 능력보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정직함이 필요하다.
-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 전에 내 안의 악한 농부를 돌아보고 삶의 주권을 주님께 돌려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