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가는 교회
설교 요약
오늘 교회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설렘이 있었습니까?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였습니까, 아니면 또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었습니까?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자격을 증명하는 곳이 아닙니다. 지친 사람이 쉬고, 질문하는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넘어진 사람이 다시 주님께 나아오는 곳입니다. 내일을 향해 가는 교회는 무엇을 더 많이 이루기 전에, 사람들의 어깨에 불필요한 짐을 얹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주장 앞에서, 소중한 신앙의 전통은 누군가에게 넘기 어려운 문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우리도 그들도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선언합니다. “성령과 우리는”이라는 고백에는 말씀을 살피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분별한 공동체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은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익숙한 방식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평일에는 깨우기 어려운 아이가 교회 가는 날에는 쉽게 일어납니다. 교회에 가면 즐겁고, 반가운 사람들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덟 살 아이가 덧붙인 말은 마음을 오래 붙잡습니다. “때론 기다린 사람 없으면 내가 기다리면 돼.” 사랑받는 자리에 머물던 아이가 이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거창한 계획만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이런 작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도 그 기다림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처음 온 사람의 이름을 묻고, 함께 밥을 먹고, 보이지 않는 이의 안부를 물어보십시오. 청년의 질문을 믿음 없음으로 단정하지 말고, 어른의 삶에 담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도 귀 기울이십시오. 지친 사람이 조용히 기도하고 싶어 한다면 성급히 말을 건네기보다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본질에는 하나 됨을, 비본질에는 자유를, 모든 일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을 때 교회는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이 됩니다. 좋은 뜻으로 행동해도 오해받고, 양보했는데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바울도 그런 밤을 지나갔습니다. 감옥 문이 열리기 전, 주님은 그의 곁에 서서 “담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가 남아 있어도 주님이 함께하시면 내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실패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었다면, 이제 우리가 누군가를 기다립시다. 우리의 곁에 서시는 주님과 함께라면, 불완전한 교회도 내일을 향해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핵심 포인트
-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연약한 사람이 은혜 안에서 다시 시작하는 공동체입니다.
- 오래 믿은 사람도 처음 믿는 사람도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 신앙의 본질은 지키되, 사람이 만든 불필요한 문턱으로 주님께 나아오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을 살피고 서로의 경험과 질문을 들으며 함께 분별해야 합니다.
- 오해와 실패로 길이 막힌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 곁에 서서 다시 걸어갈 내일을 열어 주십니다.
- 받은 은혜를 나누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될 때, 교회는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이 됩니다.